이재희 목사.
이재희 목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반석을 두 번 친 모세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고(20:10~13), 대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지목하셨다. 모세는 자신은 보지도 못하였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백성에게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입성한 후에 그리심산에 여섯 지파(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요셉, 베냐민 지파)를 세워 율법을 순종할 때 축복이 있음을, 마주 보는 에발 산에 여섯 지파(르우벤, , 아셀, 스불론, 단과 납달리)를 세워 율법에 불순종할 때는 저주가 있음을 선포하도록 지시했다(11:29). 후계자 여호수아는 이 명령을 따라 행했다. 그리심산은 가나안에 있는 산으로 850미터 정도의 높이로 항상 햇빛이 비쳐 나무와 숲이 울창하며 석회암이 많은 중형산이며 세겜을 중심으로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에발산은 세겜 북쪽에 위치하여 그리심산의 그림자 때문에 산의 대부분이 그늘져 있었다고 한다. 그리심산과 에발산이 마주보고 있는 것은 축복과 저주를 마주 보고 있는 것을 뜻하는데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었다는(11:26)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축복과 저주가 바로 내 앞에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따라간다면 축복이요 불순종의 길로 간다면 저주인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심산은 혼혈족인 사마리아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심산에서 자신들의 성전을 세워 예배했던 곳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만난 사마리아 여인 역시 자신들의 예배처는 그리심 산임을 강조하기도 했다(4:20~21). 그리고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세겜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12:5~7) 약속의 땅이며 또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한 고통의 산이기도 했다(22:2).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그리심산을 축복의 산으로 명령하셨을까.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고통스러운 명령에도 묵묵히 순종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 로 약속의 복을 받은 곳이 바로 그리심산이었기 때문이다. 독자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형 한다. 독자 이삭을 바친 것처럼 하나님도 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셨다.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신 후에 함께 감람산 안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시기 위하여 올라가신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하기 위해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간절한 기도를 하셨다. 하나님의 가혹한 명령을 받아 기도하면서 순종하기까지가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를 몸소 보여주신 기도였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 마지막 기도의 모습이셨고 고독한 기도였다. 주님의 믿음의 순종과 복종이 온 인류를 구원하셨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그냥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어린아이 신앙에 머물러서도 안된다. 내 감정과 생각에 치우쳐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깨닫고 체험했다면 때로 순종과 불순종의 갈림길에서 있게 되더라도 주저 말고 순종의 길을 선택하여 합격자가 되기 원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고 기쁨과 감사로 능력의 삶을 걸어가는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내 자아를 깨는 기도 없이는 불가능하다. 부정적일 때 긍정으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능력, 순교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면 불가능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을 믿는다.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따라가려고 몸부림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향해 비전을 세우시고 도와주실 것을 믿고 승리하고 복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소망한다.

분당횃불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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