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목련의 푸른 그늘

햇살이 꽃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꽂고 정오를 넘는다 나는
매일 저것들의 생기를 빤다 밤이 오면 입술에 흰피를 묻힌
채 잠속으로 뛰어들 것이다 모르는 척,

나는 아침을 밟으면서 싱싱하다 꽃잎 한 장 넘기는 것은
내가 나를 낳는 일, 깊게 팬 쇄골의 그늘, 목젖까지 부푸는
저 목련의 푸른 그늘.

문 현 미 시인
문 현 미 시인

몸과 마음이 모두 움트는 계절이다. 곳곳에 새순들의 상큼한 인사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꽃들은 또 어떠한가.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등 봄의 전령들이“안녕? 봄이야!”손짓하며 반기고 있다.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와 움츠러든 어깨를 조금씩 펴게 한다. 지난겨울은 길었고 몹시 추웠다. 바야흐로 약동의 시간이다. 고개를 들어 저 푸르른 하늘, 드넓은 이마를 쳐다보자.

손시인이 머무른“저 목련의 푸른 그늘”아래 마냥 있고 싶다. 2연으로 이루어진 산문시를 통해 봄이 지닌 경쾌한 감각의 정원으로 들어가 본다.“햇살이 꽃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꽂”는 계절이라니 얼마나 예리한 감각인가. 그런 날카로운 시선으로 시인은“매일 저것들의 생기”를 받으며 찬란한 계절의 세례를 흠뻑 받는 중이다. 이토록 좋은 생기를 얻는 시인의 하루는 눈부시게 꽃피어날 것이다.

2연의 첫 구절“나는 아침을 밟으면서 싱싱하다”를 읽으며 저절로 싱싱해지는 나를 느낀다. 시적 화자가“꽃잎 한 장 넘기는 것은 내가 나를 낳는 일”이라고 했으니 날마다, 순간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현장을 목도하게 된다. 촉각, 미각, 시각 등 온갖 감각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좋은 시가 탄생한다. 가슴에 응어리진 것들 다 풀어버리자. 아무 죄 없는 꽃들의 착한 눈망울 속에 마음껏 머물러 보시기를. 한창인 봄의 뜨락에‘봄사람’이 되어 있는 나를 만나게 되리라.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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